2009년 07월 27일
고구려왕에 대한 중국과 우리 기록의 차이..|
태조왕(太祖王) 제위:AD 53~AD 146 본명:고궁(高宮)
삼국사기
“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사물을 보았던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날 때부터 남보다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어질고 밝아 내외에 이심(異心)이 없다"
후한서
"구려왕 궁은 태어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볼 수 있었고 국인(國人)들이 이를 두려워했다. 장성하자 용맹하고 굳세어 여러 번 변경을 침범했다"
중국측기록이 이 모양인이유...
처음으로 태조왕시기 중국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시작..
현 요령성 해성시 서북쪽에서 요동태수 채풍을 전사시킴..
동천왕(東川王,) 제위: AD 109 ~ AD 248 본명:고우위거(高憂位居)
삼국사기
"증조부(태조왕)처럼 태어나자마자 눈을뜨고 보았다."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었다"
"왕이 죽자 왕의 은덕을 사모하여 따라죽는 자가 너무많아 중천왕이 따라죽지말 것을 명령하기도 하였으나 장례일이되자 많은 이들이 따라죽어 나라사람들이 묻어주었다"
삼국지
"증조부(태조왕)처럼 태어나자마자 눈을뜨고 보았다.
"위궁(동천왕의 별명)은 힘이세고 용맹이 있었다 말을 잘타고 활에능했다"
"증조부(태조왕)처럼 장성해지자 과연 흉악하여 자주 이웃 나라를 침략하다가 나라가 잔파(殘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중국측기록이 이 모양인이유...
위나라의 요청으로 위와 연합해 공손씨의 반란을 함께 진압했으나
위나라가 약속대로 서안평을 내주지않자 서안평을 공격하여 함락시킴
그후 위나라 유주자사 관구검의 침입을 받아 수도 환도성까지 함락되는 위기에 빠지나 밀우와 유유의 활약으로 격퇴
뭐..게네들입장에서야 강대한 적이었으니..이해할만도...
# by | 2009/07/27 02:06 | 이런 저런 글들 | 트랙백




